버스로
할 수 있는 놀이
버스를 타면 아이는 창가에 앉아 지나가는 걸 구경만 합니다. 카드 찍는 삑- 소리도, 벨을 먼저 누르는 손도, 내릴 곳을 아는 것도 다 어른 몫이에요. 아이 손에 남는 건 문 앞에서 잡는 손 하나뿐입니다.
놀이로 바꾸면 이 순서가 통째로 뒤집힙니다. 의자 두 개만 놓아 줘도 아이가 앞자리부터 차지하고, 카드는 자기 입으로 소리를 내며 찍고, 내릴 때는 자기 손으로 벨을 누릅니다. 늘 옆에서 보기만 하던 걸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가 해 보는 거예요.
버스 놀이가 유난히 오래 가는 것도 여기서 나옵니다. 자동차는 밀면 그만인데 버스는 채워야 할 게 많아요 — 벨, 카드, 번호, 안전벨트, 정류장까지. 채우다 보면 지켜야 할 것도 하나씩 늘어나는데, 자기가 만든 거라 자기가 지킵니다. 준비할 것도 없습니다. 의자 두 개를 앞뒤로 놓고 어른이 뒷자리에 앉으면, 그 순간부터 이미 버스입니다.
의자 줄 세워 타기
의자를 두 줄로 세우고 맨 앞에 하나를 따로 놓으면 그걸로 준비가 끝입니다. 제가 앞자리에 앉아 “출발합니다” 하면, 아이들이 우르르 뒷줄로 달려와 앉아요.
저는 의자를 딱 붙여야 진짜 버스 같을 줄 알았는데, 아이들한테는 다리 들어갈 틈이 더 급했습니다. 붙여 놓으니 아무도 못 앉고 의자 위로 올라가더라고요. 한 뼘씩 벌려 놓고 나서야 다들 제자리에 앉아서 “출발!” 하고 같이 외쳤습니다.
창문이 없는 게 아쉬워서, 저는 텔레비전을 하나 켭니다. 도로를 달리는 영상을 앞자리 쪽에 틀어 두면 그게 그대로 창밖이 돼요. 처음엔 그냥 화면을 보던 아이들이 버스가 진짜 달리는 줄 알고부터는 몸을 좌우로 기울이고, 지나가는 걸 손가락으로 짚습니다.
한 아이가 자리에 앉으면서 “정류장 도착했어요” 하고 외치니까, 다음 아이도 차례를 기다렸다가 앉으며 똑같이 외쳤어요.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기사님과 손님 되기
기사를 하라고 시킬 필요가 없습니다. 제가 뒷자리에 손님으로 앉으면 아이는 그새 혼자 앞으로 가서 앉아 있어요.
문제는 그다음입니다. 의자는 두 개인데 기사를 하겠다는 아이는 서넛이에요. 여기서부터는 아이들이 알아서 합니다. 가위바위보로 순서를 정하기도 하고, 종이를 목에 걸어서 그걸 두른 사람만 기사를 하기로 정하기도 해요. 목걸이를 만든 날은 신기하게도 서로 안 다퉜습니다. 목걸이 하나면 되는구나 싶었어요.
기사가 정해지면 그때부터는 말이 술술 나와요. 손을 앞으로 뻗어 "어디까지 가세요?" 하고 묻고, 마트라고 하면 부릉부릉 소리를 내며 진짜로 출발합니다. 저는 운전만 하면 되는 줄 알았는데, 아이는 지켜야 할 게 하나 더 있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신호등도 있어야 하는데" 하더니 종이에 동그라미를 그려 빨강 초록을 칠했습니다. 그날부터는 신호를 보고 서고, 신호를 보고 출발했어요.
한 번 기사를 하고 나면 다음엔 손님을 하고 싶어 합니다. 자리를 바꿔 앉으면 방금 손님이던 아이가 "어디까지 가세요"를 그대로 따라 물어요. 그렇게 몇 번을 바꿔 앉느라, 저는 한 번 타는데도 마트를 두 번 가고 놀이공원을 한 번 갔습니다.
정해 준 건 의자 두 개뿐인데, 나머지는 아이들이 다 채웁니다.
상자로 버스 만들기
옆면에 네모 몇 개만 오려 창문을 내주고 색연필과 스티커를 쥐여 주면, 아이들은 벌써 버스라고 부릅니다. 창문을 그려 넣은 아이가 “이건 창문에요!” 하고 알려 주고, 옆에서 지켜보던 아이는 “버스가 멋져요!” 하며 감탄만 해요.
자른 자리와 모서리에는 테이프를 미리 한 번 둘러 두세요. 손이 스치는 자리라 날이 서 있으면 다치고, 들어가고 나오기를 반복하는 자리라 나중엔 거기부터 뜯어집니다. 테이프를 아이 손 닿는 데 두면 벌어질 때마다 자기가 감아요.
다 꾸미고 나서 한 아이가 상자 안으로 들어가 앉으며 “저는 승객이에요!” 하자, 다른 아이가 얼른 앞자리를 차지하며 “저는 기사님이 될래요!” 했어요. 저는 그제야 알았어요. 밖에서 같이 색칠할 때는 그냥 상자였는데, 안에 들어간 순간부터 자리가 갈립니다.
블록으로 버스 만들기
비 오는 날 차 소리를 들려주고 우리도 만들어 볼까, 뭐가 있어야 할까 물었더니 “블록이요!”, “와플 블록이요!”, “운전하는 자리요!” 하고 줄줄이 나왔습니다. 자동차를 만들자고 꺼낸 말이었는데 한 아이가 “버스요! 친구들도 다 같이 탈 수 있는 버스요!” 하고 바꿔 놓았어요. 뭐가 있어야 되냐고 물어보면 대답이 먼저 튀어나옵니다. 블록으로 틀을 세우고 넓은 블록을 두 줄로 눕혀 자리를 나누면 그게 버스예요. 다 타고 나서야 다 같이 “출발합니다~!” 했습니다. 제가 한 일은 만들어 보자는 말 한마디였어요.
세운 블록은 앉는 순간부터 빠지기 시작합니다. 종이벽돌이나 스펀지 블록처럼 가벼운 것으로 하면 무너져도 아이가 웃으면서 다시 세워요. 와플 블록으로 세운 버스에 앉아 놀다가 자꾸 빠지니까 한 아이가 “왜 자꾸 빠지지?” 하고 물었어요. 옆에 있던 아이가 테이프를 가져와 이어진 데를 붙였는데, 또 빠지자 “이건 너무 약해요, 튼튼한 상자로 버스 만들고 싶어요” 하더라고요. 저는 다음 날 상자를 하나 내줬을 뿐입니다.
정류장 만들어 기다리기
색연필과 스티커를 쥐여 주고 표지판을 그려 보라고 했더니, 한참을 그리다가 “여기 어린이 보호 표시 있어야 해요” 하며 하나를 더 그려 넣더라고요. 저는 안전 표지판 얘기를 따로 해 준 적이 없는데, 어디서 본 건 다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표지판이 먼저고 버스는 그다음입니다. 의자 옆에 세운 종이 한 장이면 정류장이 됩니다. 정류장이 없으면 의자에 앉았다 바로 일어나 버려요. 있으면 눌러앉아서 안 움직입니다. 두 군데 만들어 놓으면 더 낫습니다. 한 곳에서 타서 다른 곳에서 내려야 오고 가는 게 되거든요. 한 곳만 있으면 탔다 내렸다만 하다 끝납니다.
기다리라고 하면 못 기다리는 아이가 정류장에 앉으면 기다립니다. 정류장 의자에 앉은 아이가 “버스 언제 와요?” 하고 몇 번이고 물으면서도 자리를 뜨지 않아요. 밥 먹을 때는 삼 분을 못 앉아 있는 아이인데요. 줄이 길어지면 먼저 앉은 아이가 뒤에 온 아이한테 순서를 양보하기도 합니다. 못 기다리는 게 아니라 기다릴 이유가 없었던 겁니다.
버스 번호 붙이기
버스를 다 만들어 놓고 나면, 아이가 앞자리에 번호가 없다는 걸 먼저 알아챕니다. 아무 숫자나 쓰지 않아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 하더니 적어요. 아직 못 쓰는 아이는 자기가 아는 모양대로 그려서 붙입니다.
한번 정해지면 그 번호가 진짜가 됩니다. 밖에서 본 번호를 그대로 옮겨 오기도 해요. 자기 버스에 100번을 붙인 아이가 “어, 우리집에 오는 100번 버스다. 나 이거 타본 적 있어” 하고 아는 척을 합니다. 한 아이는 “나도 7019번 봤어요” 하며 자기가 본 버스를 친구들 앞에서 소개했습니다.
번호판을 하나만 붙여 두면 하루 만에 시들합니다. 저는 그걸 모르고 매번 새 종이를 오려 줬어요. 그러다 한 아이가 번호 위에 다른 번호를 덧대어 붙이더니, 들었다 놨다 하면서 “번호가 바뀌었어요” 했습니다. 위에 붙인 700번 밑에는 360번이 그대로 숨어 있었어요. 종이 한 장으로 버스가 두 대가 된 겁니다. 아이는 곧장 번호판을 뒤집으며 “700번 버스 출발합니다!” 하고 소리쳤어요.
카드 찍고 타기
문 옆에 작은 상자 하나만 세우면 그게 단말기가 됩니다. 카드는 손에 잡히는 걸로 아무거나 씁니다. 소리도 아이가 냅니다. 카드를 대면서 입으로 “삑.” 하고, 지나가다 한 번 더 “삐익.” 하기도 해요. 그 소리 하나로 아이는 벌써 버스에 오른 겁니다.
그런데 아무 카드로나 놀던 아이가 갑자기 손을 멈출 때가 있습니다. 저희 반은 처음에 레고 블록을 카드 삼아 놀았어요. 다들 “이건 카드야”, “내 카드는 빨간색이야” 하면서 잘만 찍고 다니는데, 한 아이만 손을 내리더니 이러더라고요. “근데 이건 진짜 카드가 아니야. 진짜 카드는 다르게 생겼어.” 그러고는 미술 영역으로 가서 이면지에 네모를 그리고, 안에 자기가 그리고 싶은 그림을 채우고, 가위로 오려 왔어요. “이것봐라, 내 카드는 이렇게 생겼다.” 하고는 다시 단말기 앞으로 가서 “삐익.” 하고 올라탔습니다. 그 카드, 제가 미리 오려서 쥐여 줬으면 못 봤을 장면이에요.
다음 날도 아이는 그 카드를 지갑에 넣어 들고 옵니다. 색깔을 고르고 리본이며 반짝이 스티커를 붙이며 지갑 하나를 다 꾸민 뒤였어요. 지갑을 열어 보이며 이러더라고요. “저 이 버스카드로 버스 타는 놀이 할 거예요.” 단말기가 없는 자리에서도 그 아이의 버스는 어디서든 섭니다.
하차벨 눌러 내리기
아무도 안 어겼는데 벌써 규칙이 생겼습니다. 블록으로 만든 버스에 앉아 있던 아이가 옆에 굴러다니던 둥근 자석 블록을 벨 삼아 손으로 꾹 누르며 “내릴려면 벨을 눌러야 하잖아요” 하고 먼저 못을 박았어요. 아직 아무도 안 내렸는데, 자기가 먼저 정한 겁니다.
벨은 병뚜껑이나 동그란 스티커를 벽에 붙이면 됩니다. 소리 나는 삑삑이가 있으면 더 좋지만 없어도 돼요. 아이가 입으로 “삐-” 하고 냅니다.
진짜 시험은 그 규칙을 누가 어겼을 때 옵니다. 제가 손님으로 그냥 일어나 내려 버렸더니 운전하던 아이가 “내리려면 벨을 눌러야 해요” 하고 저를 붙잡았어요. 어른이 정해 준 규칙이 아니라 자기들이 먼저 만든 거라 아무도 안 어깁니다. 그 한마디에 다 같이 손을 뻗어 벽을 누르고 “삐” 소리를 내고서야 우르르 내렸습니다. 한 명이 어기면 다 같이 다시 눌러야 끝나는 것, 그게 이 놀이의 진짜 재미예요.
안전벨트 만들기
버스를 다 만들어 놓고 자리에 앉던 아이가 벌떡 일어나 어디론가 뛰어가더니, 레이스끈을 손에 들고 돌아와 의자에 앉아 허리에 둘렀어요. “버스에는 안전벨트가 있어야죠.” 그러고는 두꺼운 반짝이 종이를 동그랗게 말아 테이프로 의자에 붙였습니다. 그게 잠그는 버튼이라고 하더라고요.
매는 게 아니라 만드는 놀이입니다. 끈을 허리에 둘렀다 풀었다 하는 시늉만으로 아이는 이미 다 한 거예요. 오히려 누르는 버튼을 하나 만들어 주면 그것만 몇십 번씩 누릅니다.
옆에서는 다른 아이가 규칙을 그리고 있었어요. 종이에 사람을 그려 의자 등받이에 붙이길래 무슨 그림이냐고 물었더니 “의자에서 일어나면 안돼요 그림이에요” 하더라고요. 저는 그날 앉아 있으라는 말을 한 번도 안 했는데 말이에요.
정류장에 나가 보기
집 앞 정류장까지 걸어가 잠깐 서 있다 오면 됩니다. 타지 않아도 돼요. 버스를 탈 때는 아이가 이걸 볼 틈이 없습니다. 손 잡고 서둘러 올라타고 자리에 앉히기 바쁘거든요. 타지 않고 서 있으면 그제야 다 보여요.
산책하다 정류장을 지나던 아이가 서 있는 버스를 보고 손가락부터 나갔어요. “선생님, 빠방.” 제가 “버스 발견했네.” 하니 그 자리에서 “버스” 하고 따라 부르더라고요. 지나가는 자동차도 그냥 안 넘어갑니다. 저건 뭐냐고 하나씩 물어요.
멈추는 순간이 제일 좋습니다. 버스가 정류장에 서자 “선생님 버스예요!”, “버스가 멈췄어요!” 하고 소리를 질렀어요. 문이 열리고 사람이 오르내리는 걸 “사람 타요”, “문 열렸어요” 하면서 한참을 봅니다. 저는 그냥 서 있었는데 오 분이 갔어요.
버스는 왜 여기서 서냐고 물어봤더니 “사람 타려고요” 하더라고요. 매일 지나치던 정류장인데, 이유를 소리 내어 말해 본 건 그날이 처음이었을 겁니다.
버스가 바짝 붙어 서기 때문에 나가기 전에 어디 서 있을지부터 정해 주세요. 자리가 정해지면 손을 잡고 마음 놓고 볼 수 있습니다.
언제 하면 좋을까요
버스를 타고 온 날이 그날입니다. 할머니 집에 다녀왔거나 나들이를 다녀온 날에는 아이 머릿속에 버스가 통째로 들어 있어요. 그날은 의자 두 개만 마주 놓아 주세요. 아이가 먼저 올라가 있을 겁니다.
노란 버스를 타고 나가는 날이라면 전날 저녁이 진짜 준비입니다. 현장학습이나 소풍을 앞둔 아이는 자기 전부터 "내일 버스 타요?" 하고 몇 번을 물어요. 그 밤에 의자 두 개로 미리 태워 보내면, 다음 날 아침 진짜 버스 앞에서 안전벨트를 자기 손으로 먼저 맵니다.
버스를 잘 안 타는 집일수록 오래 갑니다. 늘 차로만 다니는 아이는 놀이에서 처음 타 보는 거라 하나하나가 다 새로워요. 손님인 어른이 카드를 찍고 자리에 앉고 내릴 때 벨을 누르면, 그걸 보고 그대로 따라 합니다.
버스는 어떻게 준비할까요
- 의자 둘이면 시작됩니다 — 앞이 기사석, 뒤가 손님석. 등받이 없는 방석이나 쿠션이 오히려 낫습니다
- 블록이 있으면 버스가 한 번 더 나옵니다 — 두 줄로 세우면 몸통이고, 벽돌 블록을 눕히면 그대로 의자가 됩니다. 종이벽돌이나 스펀지처럼 가벼운 것이 낫습니다. 앉다가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두세요
- 큰 상자 하나 — 옆면은 어른이 미리 오리고, 자른 자리에는 테이프를 한 번 둘러 주세요
- 두꺼운 종이와 작은 상자 여러 개 — 카드와 단말기, 번호판, 정류장 표지판이 다 여기서 나옵니다
- 병뚜껑이나 동그란 스티커 — 벨입니다. 아이 손이 닿는 낮은 데 붙이세요
- 테이프는 아이 손 닿는 데 — 상자 버스는 하루에 몇 번씩 뜯어집니다. 고치는 것까지가 놀이예요
- 같이 두면 좋은 것 — 색연필·스티커·끈·봉투·인형
- 끈은 짧게 잘라 두세요 — 안전벨트처럼 허리에 감았다 푸는 시늉은 짧은 끈으로도 다 됩니다. 길면 뛰어놀다 어딘가에 걸릴 수 있으니, 다 놀고 나면 걷어 두세요